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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무력해지는 일상을 견디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건 이해받았다는 느낌,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관계 속 인정뿐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작은 호의만 보여도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달콤한 말로 조종하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자신이 행복을 누리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하기에 불행의 세계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날 사랑하는게 맞아?" 하고 의심하고 집착하며, 상대를 시험하려 한다. 눈치를 보는 습관에 젖어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비극적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첫째,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에서 벗어날 것. 그럴수록 너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이 주변에 늘어난다. '내 인생은 원래 불행해'라고 말하는 걸 그만둬라.
둘째, 일상에서 작은 거절을 조금씩 해볼 것. 거절도 근육이 필요한 일이라 처음에는 어렵지만 작은 것부터 해보다 보면 갈수록 쉬워진다. 의외로, 거절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너를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네가 거절을 한다고 해서 떠나가진 않는다.
셋째,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을 것. 자존감이 낮으면 관계를 끝낼 때가 되어도 '이 사람 말고 또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어...'라고 질질 끈다. 일상에서 작은 성취의 경험을 쌓고 온전히 존중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면 인간관계에서 자꾸 무리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바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천히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돌이켜보니 혼자 과도하게 기대하고 섭섭해한 경우가 많았다. 문제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관계의 키를 잡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상대에게 떠맡겨버리고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속상해했구나. 상대 또한 그게 부담스러웠을 텐데...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가며 성장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대한 책임을 배우며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착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잊어버린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인생의 선택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 방관자의 자세를 취한다.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되면 포기하는 것도 빠르고 남 탓을 하는 데도 익숙하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착하다는 평가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길 권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항상 양보하지 않아도, 네 주장을 펼치더라도 미움받지 않는다"라고 조언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훈련을 하려면 '좀 미움받으면 어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거니까'하고 애써 담대해질 필요가 있다. 착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 J.D.벤스
많은 취향이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 타협의 결과일 뿐이지 않은가? 안목이란 자본과 충분한 시간이 갖추어졌을 때, 실패해도 괜찮은 여유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글 앞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줄 몰라서 후진 취향을 가진 게 아니라고요!"하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 마스다 미리<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오랫동안 고민해 선택한 결과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신조차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서도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러 책에서 반복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담담한 긍정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 대답을 오래도록 찾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통찰이 아닐까?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인간은 강요나 계몽 같은 방식으로는 바뀌지않는다. 자기 스스로 달라지기로 마음먹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해야만 바뀐다.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르는 일을 없는 일처럼 대하는 건 얼마나 아이처럼 유치하고 좁은 행동인가. 사람에 대한 상상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쉽게 미워하게 되고, 윽박지르게 되고, 잘못부터 따지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잘 모르니까,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모르니까, 쉽게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 내가 모르는 너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그런 역지사지를 꾸준히 해나가야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피해를 준다. 딱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해 비판을 받으면 상대 쪽으로 튕겨내 버리는 데에도 능하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오래 관계를 맺으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며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진다.
일상의 관계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공감 능력의 부재로 인한 폭력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공감이 인간이 타곤 것 중 가장 위대한 능력인 이유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아니라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고차원의 상상력 덕분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 같아서 누군가 나를 읽어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대충읽고선 다 아는양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다른 책 사이에서 나만의 유일한 가치를 발견해주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무언가를 보고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더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집을 오래 비워두면 집은 그 상태가 유지되는것이 아니라 먼지가 쌓이고 이곳저곳 망가져 간다. 매일 쓸고 닦아도 청소한 티가 나지 않는것 같지만, 그 덕에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것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절실함만이 최악을 막아준다.
"언제까지 확답을 주면 돼?"
과한 호의는 주는 사람도 망가지게 하지만 받는 사람도 망치더라고.
사람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적은 경험으로 일부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편견에 사로잡혀서인 것 같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하듯 누구나 1인분씩의 불운을 만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흉터에만 집중해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남을 미워하는 데서 헤어나지 못한다.
내가 상처받기를 허락하는 상대를 만나는 건 정말 멋진 일이고, 상처에서 배우는 사람만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면 슬퍼진다'는 제임스-랑게 이론
"마음이 몸을 바꾸듯 몸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 - 에이미 커디 교수<프레즌스>
'프레즌스(presence)' -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느낌, 가치와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도록 조정된 심리 상태
자세와 몸짓, 표정과 신체 습관이 마음가짐을 결정한다.
신체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자존감이 없어 고민이라면 남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신체 언어부터 점검해보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니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 미셸 오바마
이것들이 정말로 애정을 담은 비판인지, 걱정인 척 포장하며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는 것인지 따져봤다. 생각해보니 우선 나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이 많았다. 단점은 장점보다 쉽게 보이고, 비판을 하면 스스로 우월감이 느껴져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냥 재미로 그러기도 했고, 부러워서 그러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들도 나한테 그랬다는 것 아니겠나. 애정 없는 비판, 습관적인 비관, 통찰 없는 우려를 걸러내기 시작했다. 수년간 그러다 보니 나름의 기준도 생겨났다.
먼저 그것이 애정과 관심에서 나온 것인지를 확인한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무덤덤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큰일이라고 호들갑 떠는 일도 예전부터 쭉 있었던, 사소한 사안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라고 제기된 것이 과도한 일반화나 지나친 우려는 아닌지도 따져보자.
중요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주변의 소음을 낮춰야 한다.
조울증처럼 '나 좀 괜찮은데?'와 '난 왜 이따위일까'라는 감정이 반복됐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비교와 질투, 나 자신에 대한 반복되는 실망,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어린 날의 상처 등이 자꾸만 울컥울컥 튀어나온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상처 덜 받고 자존감 높게 살고 싶지만, 그게 가능했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불안이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 -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는 건 감정의 진폭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우울함이 찾아오더라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는 회복력을 얻는 일이다.
"작품과 작가는 동시에 쓰인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그 작가의 일부도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화되지 않는다. 만약 국가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고 해도 그 작품을 쓰기 전으로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한 번이라도 공들여 작품을 완성해본 작가라면 그 어떤 비수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안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조언을 거대하게 받아들인다. 확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물을 시간에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이 당신을 평가하거든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넘겨버려라.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라'하면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를 잘 모를뿐더러 나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의 과정을 모두 아는 사람은 나뿐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려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사람들이 말하게 두고, 나는 나의 일을 하러 가자.'
"회사는 아름다운 곳이 원래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음먹으면 역설적으로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교수 <픽스유>
회사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면 '회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상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하고 자꾸만 원망하게 된다. 이상향을 설정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일은 좋지만, 회사라는 조직의 특수성과 한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야 만다. 회사는 '가족' 같은 곳이 원래 아니니까.
회사 자체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일뿐이므로 사내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거나 회사의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도저히 맞지 않으면 퇴사하면 될 일이지 자책하거나 괴로워하면 울 필요는 없다.
직장 상사는 당신의 멘토가 '원래' 아니다.
직장 동료 또한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만난 동료에게도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회사나 회사 사람들에게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선 안 된다. 회사가 자기계발도 시켜주고 영혼의 단짝도 찾아주는 좋은 곳이라면 애초에 월급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이 모든 관계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유지될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고 회사에서의 관계가 일시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일로써 만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나치게 헌신하다가 배신감에 울 일도 없고 말이다.
우리는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다음 사람에게 옮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보석함에 보석들을 골라 담듯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한다.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떨어?" 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은 다른 사람들이 참거나 피하면서 생겨난 가짜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 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 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나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문태준 <옮겨가는 초원 中>
"여성으로서 직장에서 겪는 편견에 대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답
"저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생각이 계속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여자라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가? 내가 한국인이라, 동양인이라 차별받는 건가?' 상황이 좋고 결과도 좋고 협력도 잘될 때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거나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갈등이 있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나 실망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데서 '진의가 뭘까' 고민하지 않으려고 저 역시도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너무 지나치게 의심하지 말고요. 상대의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으면서 괜히 넘겨짚지 마세요. 그건 정말 건강하지 않은 업무 습관인데 그 생각에 빠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런 마음의 덫에 빠지는 동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특히 당신이 리더의 자리에 있고 서로 다른 문화권을 동료들을 대할 때는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대로 받아들이세요."
상대의 행동을 넘겨짚고 곱씹는 버릇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꾸만 의도를 곱씹다 보면 피해의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드러난 사실 자체만 봐야한다. 그처럼 적당한 무심함과 둔감함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무한하게 느껴지던 시간은 내가 건강할 수 있는 시간으로 가늠되고, 그중에서도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내 것이 아닐 시간으로도 환산해 체감하게 됐다.
그렇게 계산을 해보니, 나에게 유효한 시간은 얼마 없었다. 철저하게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니, 예전 같았으면 그냥 참았을 만한 일 중에서도 내가 피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하게 된다.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쓰면 정작 내가 필요한 곳에 쓸 수 없으니까.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인생이 끝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상상을 자꾸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가 자꾸 되내이는 것은 이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가치 없는 곳에 쓰지 말 것.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서운함 때문에 마음속에 뾰족함이 자라나 뼈 있는 말로 자꾸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 관계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이때는 서로 지쳐서 그런다는 걸 알아차리고 서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마음속에 사람의 유형을 혈액형 나누듯 감정적으로 구분하고, 내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자꾸 나누게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본능 같기도 한데, 이처럼 사람을 빠르게 판단해 편을 가르는 것이 습관이 되면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더는 확장되지 않고 멈춰버린다. 주변에 생각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만 두면 사람은 급속도로 '꼰대'가 되고 만다.
옷이 많아지자 막상 입을 옷은 더 부족해 보였다 .아침마다 뭘 입을지 고민하지만 정작 손이 가는 건 몇 개 없었다. 나에게 어떤 옷이 있는지를 다 기억하기 어려워지자 비슷한 옷을 또 사오기도 했다.
옷장과 책장을 정리하듯 인간관계도 주기적으로 상태를 살펴야 한다. 사람 사이 관계가 의미 있으려면 그것이 작용하는 맥락과 신뢰를 쌓기 위한 절대치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완> 20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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